원금은커녕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해 허덕이는 채무자들이 대거 사면·복권된다.

비싼 이자를 싸게 바꿔주고 낮은 금리로 생활비나 사업자금을 꿔주는가 하면, 원리금까지 감면해주는

 

제도가 금융당국 주도 아래 동시다발적으로 추진 또는 강화되고 있다.

특히 당국의 서민금융 지원책의 일환으로 개인 채무자 86만3천193명을 보유한 서울보증보험이

 

이 가운데 19만327명의 이자를 탕감해주고 원금도 깎아주겠다고 나섰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어림잡아 100만명을 넘는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를 구제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원칙에 역행하는 예외적 조치가 남발되면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책이 지나치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흐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신용불량자' 꼬리표 뗀다..19만명 원리금 감면

서울보증은 금융기관 등에서 대출이 나갈 때 떼일 가능성에 대비해 보증보험료를 받고 지급보증을 선다.

 

돈을 갚지 않아 서울보증이 대신 갚아준 대출자는 법인을 제외하고 86만3천193명, 상환 금액은

 

5조6천855억원에 달한다.

서울보증은 이 가운데 연체기간이 10년을 넘은 19만327명으로부터 이자를 받지 않고, 원금도

 

최대 30~50%까지 깎아주겠다고 21일 밝혔다. 이 같은 특별채무 감면 대상액은 8천964억원이다.

오랫동안 빚을 갚지 못하다 보니 이자가 원금보다 많아졌거나, 돈을 갚을 형편이 못 되는

 

`생계형 채무자'가 대부분이라는 게 서울보증의 설명이다.

 

 이들은 특별채무 감면을 신청해 승인받으면 나머지 원금만 최장 60개월에 걸쳐 나눠 갚게 된다.

서울보증이 특별채무감면을 실시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저소득층과 저신용자의 지나친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가처분소득에 비해 부채가 지나치게 많은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소득의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써야 하거나, 아예 상환 의지를 잃어버린 채 경제활동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액 신용대출자의 87.7%가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로 파악된 가운데

 

채무조정을 신청하거나 상담한 사람이 각각 1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다중채무자와 신용불량자

 

문제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학자금 또는 생활안정자금을 대출받았거나 소형승용차, 승합차, 화물차, 특장차 등을

 

할부 구입하면서 보증을 받은 서민과 학생이 신용불량자로 남으면 앞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점이 고려됐다.

 

서울보증 관계자는 "이자가 원금보다 훨씬 많아진 금융 탈락자에게서 신용불량자라는

 

멍에를 벗겨주고 이들에게 경제적 자활 기회를 주는 일종의 사면·복권과 비슷한 취지"

 

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조치엔 회수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채권을 받아내는 데 인력과 비용을 소모하느니

 

그동안 쌓인 이자는 과감히 탕감해주고 원금 일부라도 나눠 받겠다는 의도도 깔렸다.

 

◇신용회복 대책 봇물..도덕적해이·포퓰리즘 우려도

서울보증의 특별채무감면은 서민대출을 확대하고 신용회복 지원을 강화하는 금융당국의

 

서민금융 대책 가운데 신용회복 지원과 맥락을 같이한다.

 

10년 넘게 빚을 갚지 못했더라도 특별채무감면을 통해 이자를 탕감받고 원금을 나눠내기 시작하는

 

즉시 신용불량자의 꼬리표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제도로는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프리워크아웃과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신용회복기금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있다.

5억원 이하의 빚을 진 사람 가운데 1~3개월 미만 연체자가 이자를 감면받고 원금을 나눠내는 게

 

프리워크아웃, 3개월 이상 연체자가 이자를 감면받고 원금의 절반을 나눠내는 게 개인워크아웃이다.

신용회복위는 아울러 이동통신 요금을 50만원 이상 체납해 사용이 정지된 사람에게는 체납이자와

 

요금 일부를 깎아주고 나머지를 3년에 걸쳐 갚는 이동통신요금 채무재조정 제도를 하반기 중

 

도입하려고 이동통신사들과 논의 중이다.

신용회복기금 채무조정 프로그램은 빚을 장기간에 걸쳐 나눠내는 워크아웃 제도로,

 

당국은 분할상환 기간을 8년에서 10년으로 늘려줄 방침이다.

일각에선 그러나 당국 주도로 이뤄지는 일련의 서민금융 대책이 자칫 기존 대출자는 물론 미래

 

잠재적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돈을 빌렸으면 대가(이자)를 치러야 하고, 그 책임은 대출자가 지는 게 상식 아니냐"며

 

 "시장경제체제의 기본 정신에 역행하는 조치가 당연시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대출 최고금리를 연 30%로 낮추자거나 5천만원 이상 영업정지 저축은행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까지 보호하자는 정치권의 주장을 두고 표심을 의식한 대중영합주의라는 비판이

 

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뉴스출처: 연합뉴스 고일환, 홍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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